“인생은 회사도 돈도 아니죠, 삶을 바꿔보세요” ‘퇴사하겠습니다’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

2017.01.31 18:30 입력 2017.01.31 20:59 수정

‘폭탄머리’가 의외의 환영받으며 고정관념이 바뀌는 계기돼

잘나가던 회사 그만두고, 혼자서 즐겁게 사는 생활에 도전

머리를 빠글빠글하게 볶은 ‘아프로 헤어’를 한 <퇴사하겠습니다>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 일본의 유명 언론사인 아사히신문에 다녔던 그는 돈이나 회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을 위해서 지난해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이나가키 에미코 제공

머리를 빠글빠글하게 볶은 ‘아프로 헤어’를 한 <퇴사하겠습니다>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 일본의 유명 언론사인 아사히신문에 다녔던 그는 돈이나 회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을 위해서 지난해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이나가키 에미코 제공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이나가키 에미코(50·稻垣えみ子)는 지난해 1월, 한번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아사히신문사를 그만뒀다. 혼자 사는, 게다가 무직인 여성에 대한 시선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본에서 50대 독신 여성이 29년이나 다닌 회사를 왜 그만뒀을까.

엉뚱하게도 계기는 속칭 ‘폭탄머리’라고도 하는 ‘아프로 헤어’였다. 노래방에 갔을 때 젊은 시절의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잔뜩 부풀린 헤어스타일의 가발이 있길래 썼더니 함께 간 사람들이 다들 어울린다고 했고, 얼마 뒤 실제로 그런 모양으로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나가키는 헤어스타일을 바꾼 뒤 신기하게도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으면서 인생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고, 사표까지 썼다고 말했다.

날마다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에게 회사란 무엇인지 자문하며 삶을 되돌아보자고 얘기하는 그의 책 <퇴사하겠습니다>(엘리)가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이나가키는 1987년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해 다카마쓰 지국, 교토 지국을 거쳐 오사카 본사 사회부 데스크 등을 지냈다. 그를 지난 22일 e메일 인터뷰했다.

“40대 중반이 넘어서 아프로 헤어를 했는데 인생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어요. 선술집에서 ‘혼술’을 할 때, 전철에서도 사람들이 말을 거는 일은 일상다반사, 서점에서 만난 젊은 여성이 ‘저와 친구가 되어주시겠어요’ 한 적도 있다니까요. 헤어스타일이 평범한 회사원으로는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듯해요. 뜻밖에도 회사를 그만두기 위한 예행연습이 됐다고 할까요?”

그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똑같았다. 우선 다들 하는 말이 ‘아깝지 않아?’, 그리고 돌아오는 말은 ‘앞으로 뭐 할 건데?’였다. 이나가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50세가 되고 보니 인생을 ‘유한한 것’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고, 돈·명예 등에 집착해서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퇴사를 결심했다”면서 “사람들이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며 의심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많은 월급을 보장받거나 혹은 ‘사회적 인지도가 높다’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가치관이 널리 만연해 있다는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회사원은 노후 생활 등을 보장받는 혜택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렇기에 회사에 완전히 의존하게 됩니다. 한국 역시 일본 이상으로 심각한 경쟁사회이니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앞으로 경제성장이 멈추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없게 될 테고, 결국 불평 불만이 쌓인 채 인생을 낭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퇴직 후 이나가키는 자신이 속한 사회가 얼마나 철저하게 ‘회사 사회’였는지를 절감했다. 막상 회사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오니 신용카드 발급은 물론이고 은행 대출도 어려웠다.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해야 할지, 점심은 누구와 먹어야 할지, 저녁에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나가키는 “회사를 그만두어도 ‘살아갈 수 있는 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통감했다”면서 “회사에 의존하지 않는 ‘제대로 된 나’를 만들어야 일하는 본연의 기쁨도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를 그만두려고 할 때 가장 걸리는 부분은 아무래도 ‘돈’이다. 그는 “가치관을 바꾸니 수입이 없다는 게 별로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는 우선 싸고 좁은 집으로 이사했다. 지금은 세탁기도 냉장고도 수납공간도 없는 작은방에서 행복한 ‘집밥’을 먹고,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생활하는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있다.

이나가키는 “돈과 지위에 얽매이던 시절에는 좋은 집에 살며 비싼 옷을 사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내가 정말로 행복했었나 뒤돌아보면, 의외로 그렇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회사라는 ‘키높이 신발’을 벗어던졌지만, 오히려 기자 시절 때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총리를 만날 수야 없지만, 목욕탕에서 만난 아줌마와도 사이좋게 지내고, 여행 중인 외국인과도 알고 지내고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기회가 여기저기 널려 있습니다.”

이나가키는 “이제 막 시작한 도전에 지나지 않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기는 하다”면서 “수입과 사회적 지위만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본 사회에 대한 소소한 반항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후회…하냐고요? 오히려 후회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인생=회사’도, ‘인생=돈’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네요. 당장은 음악이랑 댄스, 목공을 배울 생각이에요. 그걸 잘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혼자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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